미 해군이 한국 핵잠에 던진 조건…“국격 과시라면 잘못된 이유”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하려면 먼저 풀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단순히 핵잠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어디에서, 어떤 임무에 투입할 것인지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해군에서도 이 부분을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실제 안보 환경과 작전 목적에 부합하는 운용 전략이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특히 핵잠이 국가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전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까지 나오면서, 향후 한미 간 핵잠 협의에서 한국 해군의 작전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 핵잠이 필요한가” 미 해군이 먼저 던진 질문
미 해군 관계자는 9일 현지 시각 하와이 진주만-히캄 합동기지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취재진을 만나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가 강조한 것은 핵잠을 보유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였습니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단순히 국가적 위상을 보여주는 이른바 ‘status symbol’로 생각한다면 적절한 접근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핵잠 전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결국 핵잠을 도입하는 것 자체보다 핵잠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먼저 명확해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 해군 측은 한국이 제시해야 할 구체적인 이유를 미국이 대신 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도 나타냈습니다. 한국의 안보 환경과 해군 전략을 바탕으로 스스로 필요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젤 잠수함과 다른 핵잠, 비용도 차원이 다르다
핵추진 잠수함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작전 지속 능력입니다.
원자로를 동력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기존 디젤 잠수함과 비교해 장기간 수중에서 작전을 이어갈 수 있고, 먼 거리까지 빠르게 이동하는 데에도 유리합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을 얻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잠수함 선체만 건조한다고 전력화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원자로와 핵연료를 비롯해 이를 운용할 전문 인력이 필요하고, 승조원 교육부터 정비시설과 지원체계까지 새로운 인프라를 갖춰야 합니다.
따라서 어느 해역에서 어떤 위협을 상대하기 위해 장기간 잠항 능력이 필요한지가 핵잠 도입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주변 바다에만 머문다면 핵잠이 꼭 필요할까
이와 관련해 대릴 커들 미 해군참모총장이 과거 내놓은 발언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커들 총장은 한국의 핵잠이 인근 해역을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운용된다면 핵추진 잠수함의 필요성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 해군의 활동 범위를 한반도 주변에서 더 넓은 해역으로 확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커들 총장은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의 핵잠이 중국을 억제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자연스럽다는 취지로 언급했습니다.
한국 주변 해역에서 한국 잠수함과 미군이 함께 활동하는 상황 역시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더 나아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을 전 세계에 배치할 수 있는 자산으로 평가하면서, 한국 해군의 역할 역시 지역적 범위를 넘어 확대될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결국 미국 측이 바라보는 한국 핵잠의 역할과 한국이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운용 목적 사이에는 앞으로 구체적으로 조율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한국이 핵잠을 원하는 이유는 북한 잠수함 전력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북한의 잠수함 전력이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즉 SLBM 전력을 계속 발전시킬 경우 이를 장기간 추적하고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잠수함은 바닷속에 들어가면 위치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상대 잠수함의 움직임을 오랜 시간 감시해야 하는 임무에서는 장기간 잠항할 수 있는 핵잠의 장점이 커질 수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잠수함과 SLBM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핵잠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한국의 핵잠이 대북 감시와 억제에만 활용되기보다는 향후 인도·태평양의 보다 넓은 작전 환경에서 역할을 할 가능성도 함께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핵잠 도입 논의는 단순한 무기체계 확보를 넘어 향후 한국 해군의 역할과 작전 범위에 관한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북한 잠수함을 돕는다면 상황 달라질 수도
북한 잠수함 전력의 향후 변화도 변수입니다.
미 해군 관계자는 러시아가 북한의 잠수함 능력 향상을 지원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북한이 성능이 상당한 잠수함을 여러 척 확보하게 된다면 무시하기 어려운 전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 북한이 보유한 잠수함의 숫자만 보고 실제 전투 능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평가도 함께 내놨습니다.
잠수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해당 전력을 실전에서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미 해군 측은 현재까지 심각하게 우려할 정도의 구체적인 징후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향후 북한이 러시아 등의 지원을 통해 잠수함의 성능과 실제 작전 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리느냐가 한국의 핵잠 필요성 논의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핵잠과 함께 주목받는 한미 조선 협력
이번 발언에서는 한국 조선업에 대한 평가도 나왔습니다.
미 해군 관계자는 한국 조선업체들의 기술과 생산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면서 미국이 현재 필요한 속도로 함정을 건조하고 정비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한국이 보유한 숙련된 조선 인력과 체계적인 건조 경험을 활용한다면 미국의 함정 건조와 유지·정비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타냈습니다.
문제는 미국의 현행 법과 제도입니다.
미 해군 함정의 건조와 수리를 미국 밖에서 진행하는 데는 법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에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이 충분하더라도 실제 협력 범위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법과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한미가 원하는 수준까지 조선 협력을 확대하는 데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논의 역시 앞으로 단순히 ‘보유하느냐, 보유하지 않느냐’만으로 결정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북한 잠수함과 SLBM 대응이라는 한국의 안보 수요, 미국이 기대하는 인도·태평양에서의 역할, 천문학적인 건조·운영 비용, 핵연료와 원자로 문제, 그리고 한미 조선 협력을 둘러싼 법적 제약까지 함께 검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핵심은 한국이 왜 핵잠을 필요로 하고, 실제 확보한 뒤 어디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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